목록여행, 그 흔적들.../한국의 성지들 (21)
하얀남자의 일상
금사리 성당은 지금으로 부터 110년전인 1901년 5월 프랑스인 공베르신부에 의해 착공하여 1906년 4월 완공되었다. 여타 성당과 달리 금사리 성당은 마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에 위치한 "평화의 모후" 마리아상 특이하게 돌제대가 위치하고 있는데 돌제대 한쪽에 '1913년 9월 2일 민 주교 축성'이라고 써 있는 글씨가 그 역사를 말해준다. 이 돌제대는 본당이 새성당을 건립한 후 1971년 규암성당으로 옮겨갔다가 되돌아 왔다. 1907년 추가 건축 시 사제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지금은 "대건의 집"이란 이름으로 교육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충남지방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었던 금사리 성당은 중국인 기술자가 고용되었고 신자들이 도와 건축되었다. 꽃잔듸의 화사한 색이 그 역사의 색을 더 해준다. 금사..
흑산 성당은 흑산도 지역 신자의 급증으로 1951년 공소를 설립한 이후 4개의 공소가 설립되어 본당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57년 골롬반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성당부지를 마련한 후 그 해 사제관을 준공하고 그곳에 임시제단을 꾸미고 미사봉헌이 시작되었고 1958년 3월 공사가 시작되어 11월 축성되었다. 작은 오르막과 함께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은 옛 성모중학교 자리입니다. 묵묵히 해풍을 50여년 동안 지켜낸 역사가 숨쉬는 공간으로 향합니다. 십자가의 길... 제3처 제4처 마치 브라질 코르코바두에 있는 성심상을 보는듯 하다. 이 언덕길을 열심히도 올라 온 게 한마리. 초장박물관. 흑산도의 카톨릭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초장이란 시신을 묻지않고 풀을 덮어 그대로 장사를 지내는..
길을 지나칠 때면 보이는 작고 아담한 공소는 아련한 마음을 준다... 홍도 선착장에서도 바라다 보이는 홍도공소는 한여름 대나무 숲에 가려진 채로 그 모습을 보여준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벽체를 돌로써 구성한 공소가 나타난다. 마리아상은 몽돌해변을 뒤로하고... 3~40명이 앉으면 족한 공소는 편한 마음으로 공소예절을 볼 수 있다. 홍도1구 공소는 흑산도 천주교당 6개 공소 중 하나이다. 공소예절의 시간... 무더위로 땀이 떨어지건만 예절에 참석한 신자들의 신심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공소회장이신 고 야고보님은 한분도 빠짐없이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신다...
수리치골 성지를 향한다. 지난 겨울 일본 북해도에서 본 트라피스트 성모성심수도회가 생각나는...공주에서도 한참을 지나 드디어 보이는 수리치골 성지 푯말. 수리치골 성지 입구. 왼쪽으로는 성모칠고의 길과, 십자가의 길, 겟세마니 동산이 있고우측으로는 티없으신 성모성심을 주보로 창립된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가 '성모성심을 통하여 천주성삼께 영광을!'이라는 모토 아래 성지를 가꾸며 기도하며 나자렛에서의 성모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수리치골은 박해시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자들이 숨어 살게 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서 유서 깊은 신앙의 요람지 이다. 이곳 산에 많이 자생하던 수리치라는 산나물 이름에서 비롯되었고,이곳 수리치골에 신앙의 전성기에는 백여 호의 신자 마을이 형성되었고, 좁은 골짜기이고 보니 산중턱까지 ..
수리산을 향하는 안양의 병목골(골짜기의 생김새가 병목처럼 잘록하게 좁아서 ‘병목골’이라고 불리운다) 깊숙히 자리잡은 수리산 성지는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피난 와 살았던 교우촌이자 최경환 성인의 유해를 모신성지이다. 신자들이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활했기 때문에 ‘담배촌’이라고 불렸다. 순교자 최경환 성인의 반신상 기념관에는 최경환 성인의 생애와 담배골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맞은편 이성례 마리아집은 현재식당과 피정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념관에서 성당으로 향하는 길, 마주치는 바뇌의 성모상 성당을 겸하고 있는 최경환 성인의 고택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최경환 생가는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초가가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여늬 성당과는 달리 벽면은 황토벽으로 꾸며져 토속적이며 아늑하다...
당진 왜곡마을을 나오는 길, 성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 솔뫼성지를 향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金大建, Andrea, 1821-1846) 신부님은 이곳 충남 당진군 송산리 솔뫼에서 1821년 8월 21일태어나,10세 전후인 1830년경에 솔뫼를 떠나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용인 산중으로 피신하였고, 그곳에서 1836년에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와 만주에서 수학을 하였다. 1845년에 한국인 최초로 천주교 사제가 되었으나, 이듬해에 국사범으로 체포되어 9월 16일에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자 김대건 신부님은 1925년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복자품에 올랐고, 1949년에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정해졌으며,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입..
"신유, 기해, 병인박해를 통해 300여 인(人)의 순교자가 탄생한 남한산성은 한강이남 경기지역의 교우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교 터이다." 남한산성 순교성지 홈페이지 소개란 첫 글귀이다. 관방의 요지며, 보장처로서 주목되어 산성이 축조되고, 행정치소가 산성 안에 마련되고, 나아가 광주유수가 임명된 남한산성이 천주교와 관련을 맺고 순교성지로 바뀌게 된 이유는 광주부윤이 토포사를 겸하면서 이곳이 바로 형장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의 토포사는 광주 고을의 치안을 맡으면서 동쪽으로는 양근의 용진, 서쪽으로는 안산의 성곶이, 북쪽으로는 한강, 남쪽으로는 이천, 여주, 양지, 용인에 이르는 고을 안에서 강도나 역도들을 섬멸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면 토포군관들은 위의 지역으로 나가 ..
전주 전동성당... 100여년의 천주교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전주 출장 길에 마음 먹고 들려보기로 하고 전동선당으로 향합니다. 전동성당은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이며, 천주교 신자의순교지이기도 한 곳으로 1889년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보드네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V.L.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1914년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의 하나로, 건물의 주춧돌은 풍남문 성벽을 헐어낸 돌이며 붉은벽돌 건물로서, 본당과 측랑(側廊)의 평면 구성에다 내부는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작은 종탑들은 조화로운 입체감을 창출, 건물의 상승감을 더해 준다. 종머리는 로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