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남자의 일상
천진암 성지를 가다 본문
사실 이천의 단내성지를 가려고 나섰고 연휴라 고속도로가 막힐 것 같아 3번국도로 천천히
가며 주위의 맛있는 점심을 같이하려 들어섰으나 이게 웬일...온통 주차장이다.
광주 도자기 비엔날레와 용인 자연농원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결국 순간적인 판단으로 천진암으로 렉동이의 방향을 돌렸다. 목표 수정, 천진암 성지로...
시골의 여유로움도 잠시 천진암으로 들어 갈수록 음식점의 천국이다. 이리도 많이 변했나?
점심을 하기위해 근처, 손두부집으로 들어섰는데 주인장 취미가 고상하다. 온갖 꽃들을 오밀조밀 잘도 꾸며놓았다.
붉은색이 너무도 고와서...
못쓰는 주철 가마솥도 이렇게 훌륭한 화분이 되었다. 주인장은 양은주전자 화분이며 아이디어가 좋다.
에그 촛점이 맞지 않았네...금낭화
쥔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손두부 전골...사실 모양도 맛도 그리 훌륭치는 못했어요. 멸치볶음은
아주 잘 볶았던데...묵은지는 아니어도 김치, 마늘쫑볶음, 두릅은 괜찬었어요. 2인분 12,000냥.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천진암으로 향하는 길에 웨딩스튜디오가 많더군요. 어느 스튜디오 올라가는 언덕에 핀
봄꽃들의 잔치...너무도 화려해서 담았습니다.
드디어 천진암 성지의 입구. 사진에서 보았지만 여늬 성지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주차를 하고나서 입구에 있는 방명록에 기록을 하고서야 출입이 가능하다.
천진암 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이다. 천진암은 우산리 앵자봉 기슭에 있는 조그만 암자로
어느 때인가 없어져 버렸지만,1779년 겨울 바로 이곳에서천주교 교회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천진암 주어사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고, 권철신, 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 명의 석학들이 광암 이벽의 참여와 함께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이곳에서 마련하게 된다.
한국 교회의 발상지로서 천진암은 교회사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1960년에 와서야
이곳 지명들이 문헌에 근거해 밝혀졌고 마을 노인들의 증언과 답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
천진암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드디어1980년 6월에 이곳 일대 12만 평의 땅을 매입, 성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한 1981년,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일신 형제의 묘가 이벽의 옆으로
나란히 모셔졌고광암 이벽 선생을 기념하기 위한 광암 성당이, 또한100년이 걸리는 한국 천주교회
창립 기념 순례 대성당을 비롯해 창립사 연구소, 박물관, 신학 연구소, 강학당, 피정의집 등이 지어지고 있다.
건축 예정인 대성당 초입의 눈에 익지않은 십자가와 기!!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한다.
5년여만에 봉헌된 성모경당 (대성당이 봉헌되기 전까지 경신예절을 이곳에서 거행)
대성당의 건축 예정지. 사방에 기본 철골과 거대한 초석이 놓여있다.
1980년 6월24일 세워진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비 (총 5,000자)
강학당지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5위 묘역
묘역을 바라보며 왼쪽부터, 선암 정약종 묘, 만천 이승훈 묘, 광암 이벽 묘, 직암 권일신 묘, 녹암 권철신 묘
광암 이벽의 독서처
독서처 앞에 핀 아름다움
내려오는 길, 산새가 박자를 맞추어 지저귄다.
아직은 봄이다....
입구에 있는 성지 주위의 신도들을 위한 광암성당. 미사는 이곳에서 봉헌된다.
광암성당
십자가의 길 중...
작은 시작과 단계별 보다는 한꺼번에 너무 큰 이룸을 위해 사업이 벌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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