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남자의 일상
베티 성지에서... 본문
일주일의 피곤함과 힘들었던 마음을 씻고자 베티성지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 국도의 정체는 심했지만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드라이빙이 아주 상쾌하다.
휴게소에서 숙취를 떨고자 라면으로 속을 풀고 일죽에서 다시 국도로 들어선다.
국도는 아직도 여유가 있다. 주위도 살필 수 있고 보다 한적함을 갖는다...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는 한국의 카타콤베라 불리우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서 많은 순교자의 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와 피정의 집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란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영조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 패전하였다
는데서 패치라 불리우다 바뀌었다는 설이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신앙을 지키고자 서울과 경기도에서 흔적이 없고, 척박한 산간지대를 찾아
몸을 숨긴 많은 교우들이 배티골짜기와 산너머에 비밀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를 거쳐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날 때 까지 선교사들이
진천에 배티, 삼박골, 용진골, 새울, 굴티등 5곳에 공소를 설정하게 되었으며 15곳의 교우촌을
(삼박골, 정삼이골, 절골, 용진골, 발래기, 통점, 동골, 새울, 은골, 불무골, 모니, 소골, 지구머리,
지장골, 굴티 등)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신자들은 터를 잡아 움막을 짓고, 화전을 일구며,
숯가마를 운영해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복음과 진리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병인박해 이후 배티와 소학동 일대의 교우촌은 55명의 순교자를 내고 일시적으로 와해됐고
신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박해가 그친 1870년 무렵부터 다시 이곳에 모여 복음의 새 터전을
닦아 나갔습니다. 또한 1890년에는 배티공소에 "교리학교"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일제시대에
신자들이 하나, 둘 떠나 현재 이곳 배티에는 신자들이 생업을 영위하던 옹기점과 무명순교자의
묘 만이 남아있다. 청주에서 진천을 거쳐 백곡 저수지를 지나 8km정도가면 양백리가 나타나는데
배티마을을 지나쳐 고개를 오르다가 (무명의 숨은 꽃)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이름없는 순교자
9인의 묘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묘지는 배티지역에서 생활하던 신자들이 포졸들에게 잡혀
고개를 넘어가던 중 집단 순교해 묻혀 있는 곳으로 현재는 십자가와 묵주만이 걸려 있을 뿐이다.
베티의 교우촌들... 붉은 점이 있는 곳이 교우촌 지역이다.
최양업 토마스(1821-1861)신부는 한국인으로서 두번째 사제로서, 1836년 모방 나 신부에 의해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 유학을 떠나 서구사상을 처음으로 배운 한국 최초의
유학생입니다.
그는 1849년 상해에서 강남교구 마레스카 주교님께 신품성사를 받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고국을 떠난 지 13년만인 1849년 12월 천신만고 끝에 무사히 입국한 최 신부는 1856년 자신의 거처를
경기,전라,경상도로 옮길 때 까지 약 3년 동안 배티교우촌을 사목중심지로 삼았습니다.
당시의 거처는 두 칸짜리 초가집으로 사제관이자 성당으로 이용되었고 1861년 선종하기까지
12년동안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를 순회하며 목자없는 양처럼 지치고 방황하는
신자들을 찾아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과로로 죽은" 착한 목자이십니다.
최신부님의 시신은 가매장되었다가 같은 해 베론성지로 옮겨져 안징되었습니다.
베티 성지의 입구
베티 성지의 안내판
입구의 길, 초여름의 푸르름이 한 껏이다...
순교현양비
순교현양비를 지난 입구.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묵주기도의 길로 들어 선다.
묵주기도의 길 초입에서 만난 126위 하느님의 종 계단.
첫 순교자 윤지충, 동료 순교자 최양업, 증거자 김범우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한다...
묵주기도의 길
묵주기도의 길 중간에 모신 성모상
묵주기도의 길...
대성당의 전경
디자인이 독특하다.
소성당 오른편에 있는 성체조배실
소성당 왼편에 자리한 성인 유해실
2층에 자리한 대성당
대성당을 벗어나 십자가의 길로...
대성당에서 바라 본 입구...전망이 너무도 좋다.
십자가의 길 초입에 서 있는 최양업 신부상
십자가의 길...다른 성지와는 달리 약간의 언덕에 위치하여 있다.
3처...
7처...
9처...
12처...
마지막 14처...
양업영성관, 잔디가 너무도 아름답다.
양업영성관의 잔디 조경...
야외 제대
야외 제대 위의 성모상
성모상에서 내려오는 길 왼편으로 6인 무명순교자의 묘가 있다.
배티 성지 왼편의 전시관...유감스럽게도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성지에서 나와 안성 방향 오른편에 있는 옛 신학교 및 성당 입구.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다.
광장에 조성된 또 하나,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4처의 조형이 단순하면서도 아주 강렬하다.
옛 신학교 및 성당 안에 자리한 유 데레사님의 묘
두 칸짜리 옛 신학교 및 성당
베티 성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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