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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흔적들.../훌쩍 떠난 동유럽

헝가리와 부다페스트의 강변에서 본 풍경

月靜의 흔적 2014. 11. 17. 17:06

발라톤의 수평선을 뒤로하고 이제 부다페스트로 향한다.

도로의 주변을 살피니작고 낡은 농가주택, 마당에 자가용 차량이 별로 보이지 않는 점,
그리고 한 마을 모두 일률적인 맞배지붕 형 주택 등이 사회주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헝가리는 우리와 혈통이 비슷한 훈족 후예의 민족국가이다.어순이 주어+목적어+술어의 형태라서
주변국과는 완전히 다른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다. 이 밖에도 성(姓)다음에 이름을 쓰는 것이나,
주소 체계, 엄마를 ‘어녀’ 아빠를 ‘어빠’라고 부르는 말까지도 비슷한 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술을 마시곤 술값을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나 차량 앞지르기를 당연시 하고,
경적을 울리는등., 생활습관도 우리와 닮은 점이 있단다. 그리고 비록 여러 계의 혼혈이 이루어 졌으나
아직도 아기들의 궁둥이에 몽골반점이 있다고 하며, 태몽도 꾸는가 하면, 나이를 셀 적에 우리처럼
잉태한 시점부터 포함함으로서, 만 나이로 세는 주변국들의 관습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헝가리인들은 우랄산맥 서쪽 원 거주지에서 서쪽으로 이동, 목축업을 하면서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9세기에 이 지역으로 진주해 와서 정착한 ‘마자르족(Magyar)’이다.
그들은 훈족 즉 ‘훈가리’라 불렀고, 지금의 국명 헝가리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와 같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뚜렷한 편이라 한다.우리와 비슷한 점은 헝가리의 1,100여년
역사에 936회의 전쟁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에서 930여회의 외침이 있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와 유사하게외침을 당하는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13세기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무자비하게도 인구의 반이 살해당하였는데 남자들이 거의 전멸함에 따라, 주변 슬라브계
남자들을 끌어들여 군대를 조직하고 정착시킴으로서 저절로 혼혈이 이루어지고, 여자들의 권한이
강화될 수밖에 없어서 자연스럽게 모계중심사회가 전통화 되었다 한다. 그래서 가정의 의사결정권은
100% 아내가 쥐고 있다. 한편
이들은 두뇌가 매우 좋은 편이어서 노벨상을 14회나 수상하였는데
그중 11회가 과학부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볼펜, 컴퓨터, 컬러TV, 에어컨, 냉장고,
흡입식 청소기 등을 발명하였다고 한다. 헝가리의 제일의 산업이 의학이고 비타민도 발견하였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제 유럽의 3대 야경(프랑스 파리, 체코의 프라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하나를 볼 수 있다

라는 것이 기대되고 약간의 흥분마저도 갖게 한다.


시내로 진입하면서 부다페스트의 다양한 모습이 연출된다.

표정이 밝지 않으면서 동양인의 피가 섞여서인지 성격이 급하고, 잦은 침략에 외지인에 배타적이며,

자기보호 본능이 강하다는 설명이 와 닿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금은 가라앉은 듯하다. 빛바랜 붉은 지붕과 중세풍의 건물들...

Gloomy Sunday 영화의 영향일까?

다만, 아름다운 도시이고 너무도 오래된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래서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정이 가는 도시의 느낌이다.


182만 명이라는 적은 인구의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부다(Buda)’는 대지(臺地) 위에 자리하며 왕궁과 어부의 요새인 겔레트 언덕(Gellet Hegy)

이 강기슭까지 뻗어 있고, ‘페스트(Pest)’는 저지대에 자리한 상업지역으로 주변 지구에

공장과 집단 주택이 들어서 있다.

원래 부다와 페스트는 별개의 도시로서 부다는 2세기부터 파노니안(Panonian) 지방의 로마

군의 주둔지 아쿠인쿰(Aquincum)으로 알려졌다. 14세기경 부다는 헝가리의 수도가 되고

1872년 부다와 페스트가 통합됐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 인근 소도시를

합병하여 지금의 부다페스트가 만들어지게 된다.


호텔에 Check In을 한 뒤 바로 부다페스트에 오면 반드시 해야 할 온천을 한다. 이 도시에만
약 100여개의 온천이 있다.로마 시대 때부터 시작된 온천욕은 관광객 상대의 호텔 부설 겔레르트
온천과 서민 상대의 세체니 온천이 있다. 겔레르트 온천은1인당 2,900포린트(락커룸 사용료
500포린트는 별도)로 비싼 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으나, 세체니 온천은
한 여름철 풀장처럼 부산한 가운데 서민적으로 즐길 수 있다. 어느 경우나 우리나라의 사우나탕을
연상하면 오산이며 수영복은 반드시 입어야 한다. (대여해서라도입어야 입장할 수 있다.)
또한 온천수는 원래는 80도인데 헝가리인들은 고온을 싫어하여 40도 이하로 시혀서 공급을 한단다.
사우나와 수영장을 오가다 지쳐 곧 나와 야경을 보기 위해
예약된 유람선이 있는다뉴브 강변으로
나선다.
7시경인데도 해가 중천에 있는 느낌이라 유람선에서 야경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아니나 다를까 유람선을 타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뱃머리에 나와 셔터를 눌러대지만

다뉴브 강을 두 차례 왕복을 했음에도 해가 길어서인지 배에서 내린 후에나 왕궁을 비롯한

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결국은 강변을 따라 걸으며 야경을 보기로 방향을

바꾼다. 허기사 뱃전에서 흔들림 때문에 야경을 제대로 잡기가 쉽지는 않을테지...

유람선에서 식사를 하기위해 초도 켜고 분위기를 잡아 봤지만 바깥은 밝기만 하다.
굴라쉬 SOUP과 MAIN DISH가 나왔지만 맛이 영 아니다. 결국 후식만 먹고는 뱃전으로 나선다.


길가에 스치는 헝가리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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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시내에서 만난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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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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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다뉴브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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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ágymányosi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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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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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기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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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기트 섬 안에 있는 WARER TOWER란다. 무슨 물탑이 저리도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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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기트 섬의 위성지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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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먹어 보는 굴라쉬 수프 (우리나라 육게장 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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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F가 나오긴 했는데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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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한 후식. 조금 차가웠으면 더 맛이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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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뱃전에 나와 강변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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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국립극장과 Lágymányosi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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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레르트 언덕의 자유의 여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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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찾아 온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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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세체니 다리가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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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 왕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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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겔레르트 상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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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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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는 길에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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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좋은 곳에 자리한 INTERCONTINENTAL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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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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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교회가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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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물드는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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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와 부다를 잇는 마르기트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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